끊임없는 도전… 쥬얼리 수출 신화 주역 <오유식 경영전문대학원 동문회장, ㈜한나인터내셔날 대표이사>
- 경영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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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5
오유식(경영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동문회장/ (주)한나인터내셔날 대표이사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모여들어 독특한 문화를 이룩한 미국. 특히 문화 황금기로 일컫어지던 1980년대의 미국은 상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풍부한 자본과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음악, 영화 등의 대중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아울러 1980년대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활발해진 사회 진출로 인해 직장여성들이 새로운 소비자 집단으로 부상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마돈나로 대표되는 문화 아이콘이 함께 등장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그의 창작과 쥬얼리 등의 패션 아이템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미국 대중문화의 급변과 확산의 중심에서 시류를 정확하게 예측한 쥬얼리사업체 대표 오유식(경영전문대학원) 회장이 있다.
“공무원은 정해진 프레임 속에서 움직이잖아요. 저는 세계를 무대로 진취적으로 도전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컸습니다.”
6년간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오 회장은 핸드메이드 쥬얼리 수출회사 청신산업㈜ 무역부에서 근무하며 세계 무대를 상대로 잔근육을 키워 나갔다. 1981년, 미국 LA지사로 발령받아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자신만의 업무 노하우를 견고하게 쌓아 나갔다. 컴퓨터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모든 재고파악을 꼼꼼하게 수기로 작성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시기의 경험은 차후 오회장의 개인 사업체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아 한 미국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근무할 때 저의 업무역량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한국 에이전트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었죠. 이 계기로 바이어 에이전트 ㈜한나인터내셔날이 탄생하게 됩니다.”
1984년 최초 창립된 ㈜한나인터내셔날은 창립한 그해 250만불 수익을 달성했고 차년도에 500만 불로 2배가 뛰었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까지 시장을 넓힌 결과 1,0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하며 연쇄적, 폭발적 확장의 시기를 맞이했다. 1997년 법인체제로 진환, 2001년에는 중국 현지 공장을 설립하면서 2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게 되었다. 고도성장의 시대에 선각자적 혜안을 발휘, 쥬얼리 수출로 신화를 써 내려간 것이다.
“저는 직원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효율성에 근간한 직접적인 기업 성장과도 직결되죠. 또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정직하게 일한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리라 믿었습니다”
㈜한나인터네셔날의 ‘한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기도하는 여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안주(安住)를 경계하며 정직과 신뢰, 근면 성실함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묵묵히 기도하며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해온 오유식 회장. 그의 삶의 궤적은 도전과 개척정신에 목말라 있는 이 시대에 강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